사람이 가장 감성적으로 변한다는 새벽 두시다.
블로그 글을 쭉 돌아도면서 찌질거렸던 게 전여친에 대해서만 열폭질 했던 것 같아서 이번에는 특별히 첫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malloc이라는 내 아이디를 보면 알 사람은 알겠지만 난 공대생이다. 그것도 컴공과. 하루종일 컴퓨터 모니터만 처다보면서 소스코드가 어쩌고 저쩌고...
요즘 신입생을 보면 조금이나마 나아진 것 같지만 내가 처음 입학했을 때만하더라도 우리과의 남녀 비율을 형편없었다. 여자라고는 눈을 씻고 둘러봐도 눈에 띄질 않았으며, 그나마 몇 없는 여학생들도 자기들끼리만 몰려다니기 일쑤였다.
그 시점에서는 별 상관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남고 - 공대 트리를 타고 있던 당시로서 '여자'란 생물체는 나에게 관심밖의 생물체였으며, 어떻게 해야 그들과 어울릴 수 있는지, 아니 애초에 그 정체불명의 생명체와 어울릴 까닭과 필요성을 당췌 느끼질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 당시 여자란 나에게 있어서 언어가 통하는 다른 '종'과도 다름 없었다. 연애란 TV나 소설에서나 나오는 낯설은 단어고, 사랑은 커녕 좋아한다는 감정조차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첫사랑은 낯선 상황에서 찾아왔다.
이른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교양수업을 들어갔을 때, 어디선가 한번쯤은 본 것 같기도한 느낌이 드는 여학생이 먼저 인사를 하며 책상에 퍼져있던 나에게 다가왔다. 알고보니 동기였다. 쉬는 시간 나는 음료수를 뽑아 그녀에게 건냈다. 그게 시작이었다.
시간이 갈 수록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 아이와 같이 있는 시간이 좋았다. 같이 듣는 수업을 손 꼽아 기다렸으며, 그 아이와 나누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즐거웠다.
그 아이와 떨어져 지내던 방학이 짜증났으며, 얼른 개강이 하길 목놓아 기다렸다. (오, 맙소사. 내가 미쳤었지)
그 아이를 따라 동아리를 가입하고, 그 아이에게 맞춰 시간표를 짰다. (물론 티가 안나도록)
시간이 흘러 후배를 받게 되었을 때, 후배 한명이 같이 있던 우리를 보고 연인같아 보인다며 놀렸었다. 그녀는 그 후배를 향해 공대녀답게 말보다 주먹을 먼저 날렸으며, 나는 괜시리 속으로 좋아서 어쩔줄 몰라 했다.
시간이 지났으나, 그 아이가 날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친구였다. 애석하게도 난 그러하지 못했다.
연인이든, 친구든, 아니면 그 어떠한 인간관계든 Give & Take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힘든 법이다. 내가 그 아이에게 던지던 감정은 친구를 넘어서 이성으로서의 감정이었으나, 되돌아오는 감정은 단순한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난 결단력 뿐만 아니라 용기도 없었을 뿐더러, 더욱이 멍청했다. 불을 향해 달려가는 나방처럼 맹목적이었으며, 주위를 둘러본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그 아이를 속으로만 좋아하며 2년이란 시간이 흐를 동안, 그 아이 곁의 남자친구는 수시로 바뀌어갔고, 난 초조함과 함께 심한 열등감에 휩싸였다.
열등감은 자학과 자기비하로 찾아왔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기에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내 첫사랑 또한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용기를 내어 했던 고백은 여러차례 거절당했고, 제법 시간이 흐른 지금은 여전히 그냥 '친구'란 명목에 간간히 연락이나 하고 서로의 연애상담이나 해주는 그런 시시한 사이가 되었다.
나에겐 첫사랑이란 길었던 악몽과도 같다. 그아이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알려준 동시에 보답받지 못하는 외로움이 얼마나 괴롭고 슬픈지 또한 나에게 알려줬다. 이 감정은 마치 날카로운 양의 검과도 같아, 그 감정이 배신당했을 때 되돌아 오는 상처는 좋아했던 깊이와도 같다.
이 아이에게 받았던 트라우마는 지금도 여전히 내 안 깊숙한 곳에서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나란 인간의 그릇이 좁은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들처럼 지나간 사랑의 행복을 빌어주기 보다 그들의 불행을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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