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방영한 미수다에서 방영된 내용 때문에 인터넷이 온통 떠들썩하다. 일단은 차분하게 감상하긴 했는데, 다 보고 나니 예전 글에도 링크했었던 이 동영상이 먼저 떠올랐다.
거리를 돌아다니던 일반 여성분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거니, 여성들의 남성에 대한 키의 관점은 미수다에서 루져 드랍으로 세간의 적이 되어버린 그 홍대생만의 생각은 아닐터이다.
보다시피 대다수의 여성분들이 180cm 이상의 키를 가진 남성을 원한다. 다만 이를 뭐라고 탓할 수 없는 게 남성들이 이쁘고, 가슴큰 여성을 원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세상은 키 180cm 이상의 남성을, 이쁘고 가슴 큰 여성을 현대적인 미남 / 미녀의 기준으로 만들어 놨으니 그들이 어떠한 상대를 원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이며, 굳이 남이 머리에 핏줄 세워가며 비난할 거리가 못된다.
사실 남성들이 여성분의 몸무게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듯이, 여성들 또한 키 180cm의 제대로된 높이를 알지 못한다. 키 180cm라는 건 그냥 막연한 키 큰 남자들에게 붙여지는 기준의 일종으로서, 세간에서 흔히들 키가 크다고 말한다든지, 자신이 보기에 키가 크다고 느끼면, 막연하게 180cm 이상이라고 단정 짓게 된다.
솔직히 키 180cm가 안되도 넘는다고 적당히 우겨대면, 줄 자를 가져와서 직접 재보지 않는 이상 알 길은 그리 흔치 않다.
다만 미수다의 소문의 주인공이 잘못한 점은 대한민국의 다수의 남성들을 루져, 즉 패배자로 단정 지었으며, 그들의 컴플렉스를 건드렸다는 점이다. 원래 컴플렉스란 남이 언급하면 화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남성의 키
예전에 내가 썼던 포스팅이다.
위 글에도 언급되어 있겠지만, 2006년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20대 남성의 평균 키는 173cm이다. 미수다의 여대생 패널은 남성 평균키가 173cm밖에 안되는 이 나라에서 180cm 이하의 남성들은 루져라는 막말로 대다수 남성들의 역린을 건드린 셈이다. 이건 화를 자초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바꿔 말하면 이건 가슴사이즈가 A, B컵이 절대 대다수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 C컵 이하는 루져라는 말을 한 것과 다름없다. 그것도 공중파에서.
대본대로 읽은 것 뿐이라는 사과문이 올라오기도 했으나, 고등교육을 받은 대학생으로서 남성들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한 그 정도뿐인 개념이라면 욕을 먹어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이 외에도 뜨악할 부분이 많았다. 처음에는 소문의 주인공이나 보자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봤던 미수다는 씁쓸한 뒷맛만 남긴 채 끝났다.
프로그램의 취지는 외국의 미녀(?)들과 한국의 여대생 패널들의 비교를 통해서 서로의 다른 가치관들을 찾아보자 하는 것이었겠지만, 프로그램은 한국 여대생들의 씁쓸한 자화상만을 남긴 채 끝맺었다. 한국 여대생들과 비교되는 의견을 보인 미녀(?)들을 통해 오히려 이러한 단점은 부각됐다.
프로그램을 통해 드러난 한국 여대생들의 가치관은 너무나도 수동적이었으며, 의존적이었고, 또한 자아과잉에 젖어있었다. 개념없이 내뱉는 말을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것과 착각하고 있었다.
문득 "시집 잘 갔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여성들끼리 말하는 시집 잘 갔다는, 흔히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했을 때 쓰였다. 부족하나마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을 때 시집 잘갔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를 결코 한차례도 본 적이 없다.
곧 죽어도 결혼은 경제력을 포함하여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과 결혼하려는 한국 여성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과 결혼하면서 평등을 외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가 아닌가? 아니면 뛰어난 사람에게 종속되도 상관없단 말인가? (이건 또 아닌 것 같다만)
한국 사회는 급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동시에 여권도 빠른 속도로 신장되어왔다. 지금의 젊은 여성들은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남녀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권리를 주장할 줄 아는 것이 멋진 신세대의 여성이며, 동시에 지향해야할 여성관이라고 배워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가치관은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기에 이러한 괴리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미수다의 씁쓸한 자화상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 + +
여담으로 명품에 대해서 써보고자 한다. 명품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명품의 본고장보다도 훨씬 많은 명품들이 거리를 활개치는 이 나라.
명품을 살만한 경제력이 충분하다면야 누가 만류하랴.
솔까말, 미수다에서 여대생 패널이 말했던 "금방 헤지는 싸구려 가방을 여러개 사느니, 쓸 수록 빛을 발하는 명품 가방을 하나 사서 오래 쓰는 게 낫다" 는 단연코 개소리다.
유교권의 동양 국가들이 그러하든 대한민국 또한 개인보다는 집단의 가치가 우선시 되어왔다. 나 자신의 생각보다는 집단의 생각, 주위의 시선에 더 신경을 쓴다.
명품도 그러하다. 같은 옷을 입었으면 쪽팔려할 지언정, 같은 명품가방을 들은 사람들끼리 만났을 때에는 동지의식까지 느낀다고 한다. 그것은 명품이 단연 비싸고 희소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젠 워낙 개나소나 다들고 다녀서 희소성이라고 하기에는 웃기지만)
비싸고 희소성을 지녔다는 것은 아무나 구할 수 없다는 것이고, 그러한 것을 지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남들과는 다른 지위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은 남들의 시선을 통하여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것, 바로 그게 명품의 역할이다.
콕 찝어 말하면 허영심과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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